뿌연 안개가 낀 겨울, 호수의 두꺼운 구멍을 뚫고 낚싯줄을 물속으로 드리웁니다. 폭설이 와서 집 밖을 꼼짝없이 나가지 못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여름이면 푸르거나 호박색을 한 하늘을 적당히 가리고 앉아 미역을 감고, 도시락을 챙겨서 호수로 갑니다. 날씨가 좋으면 콩밭을 일구고, 명상을 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삶의 여백에 담아두고, 친구가 오면 오는 대로, 방문객들이 돌아간 빈자리는 툭툭 털어 햇살에 말리고 홀로 있는 시간으로 채울 수 있는 삶을 살아봅니다.
매일이 바쁜 사람들이 자연가까이에서 살 수 있는 삶을 꿈을 꾸기에,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는 산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쉼 없이 보여 줍니다. (2012년 여름부터 지금가지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주, 지난 달의 누군가의 생활과 비슷한 듯도 하지만, 그럼에도 볼 수밖에 없는 끌림은 내 안에 있는 나는 못하는 그들의 생활을 '동경'하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새들은 집 가까이에서 노래를 부르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들만의 하루를 살아가는 곳에서의 2년 2개월 하고 2일을 살았던 19세기 사람,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1817 ~ 1862)의 자연에서의 삶을 담은 책, 월든. 팬데믹이 우리를 몰고 오면서, 파괴된 자연이 아파하는 결과로 인간이 고스란히 받아야만 하는 현실을 알게되면서,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서 읽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다시 읽어보는 책의 문장 속에서, 예전과는 다르게 다가오는 울림이 있습니다. 얼마 전, 갯마을 차차차에서 홍반장도 읽고 있던 책. 그를 다시 공진으로 되돌아오게 한 이끎이 아니었나 합니다.
사실, 마음은 굴뚝 같지만, 깊은 산 중으로 가서 홀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캠핑을 다녀오는 것과는 다른 것이니까요. 케빈에서 지내다 오는 것과도 물론 너무나 다릅니다. 작업 자족을 하면서, 자연을 좋은 날 온몸으로 맞이하고, 힘든 날은 버텨 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벌레도 무서워하는 사람이, 그곳에서 마주하는 야생의 친구들과의 조우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것과는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더위와 추위, 그것들을 대비하기 위해서 아무리 준비를 해도 쉽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산속으로 들어가 그 삶 속에 있다는 것은 한 분 한 분의 삶이 현실적인 걱정들을 넘어 자연에서 홀로서기를 해야만 하는 드라마틱하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 들기 전까지 SNS이 뼛 속까지 연결된 삶을 큰 맘을 먹고 끊어보고, 자연과 리-커넥트 하고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소로우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만 같습니다. " 어이, 그냥 일단 와 보게나. 이곳에서 잃어버린 모든 것들의 해상도를 높여서 자네의 삶을, 우주를 바라보게나. 우주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하다네."
월든 호숫가, 19세기, 소로우가 있었던 그 공간. 21세기 시간이 겹겹이 쌓여있는 그 공간에서 같은 곳을 향해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은 모든 분들, 어딘가에서 한달살이를 하고, 귀농을 하고 싶어서 몸과 마음이 각각 다른 곳에 있다면, 일단 소로의 이야기부터 들어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이미 읽었다고 해도, 팬데믹으로 홀로 있어야만 하는 시간을 강요받은 지금, 무엇인가 비어 있는 것만 같고 아닌 것만 같은 이 시기, 19세기 그의 삶과 오늘의 우리의 삶이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그의 통나무 집에 초대받아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대의 눈을 안으로 돌려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속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천 개의 지역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을 여행하라.
그리고 마음속 우주 지리학의 전문가가 되라.
자연처럼 단순하고 건강해야 한다.
나는 인간의 꽃과 열매를 원하는 쪽이다. 한 사람의 향기가 내게 풍겨 오기를 바라고, 인간관계 속에서 원숙한 향기가 피어오르기를 원한다. 그 선량함은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행위가 아닌, 항상 충만해야 한다. 선행을 베풀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치를 필요가 없으며 스스로 선행을 베푼다는 사실 조차 인식하지 못해야 한다.
하루를 자연처럼 유유히 흘러가듯이 살아보자. 철로 위에 떨어지는 견과류 껍데기나 모기 날개 때문에 탈선하는 기차처럼
쉽게 흔들리지 말라.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도 상대와 내면의 소리를 공감하려면, 글과 친밀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육체적으로도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것이 좋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말이란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편리하게 하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길을 잃고 나서야, 다시 말해 세상을 잃고 나서야 우리가 있는 곳을 찾으려고 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언제든 어디에 있고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들이 얼마나 무한한지를 항상 염두에 두며 살아가야 한다.
달콤한 열매는 사 먹는 사람이나 내다 팔기 위해 재배하는 사람에게는 진짜 맛을 보여주지 않는다.
월든 호수는 같은 위치에서 바라보아도 어떤 날에는 푸르고 어떤 날에는 초록색에 가깝다. 하늘과 땅을 가로지르는 곳에 있기에 여러 색을 담고 있는 것이다.
월든 호숫가에서 살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봄이 오는 모습을 지켜볼 여유와 기회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 마침내 따뜻한 햇볕이 수직으로 내리쬐고 포근한 봄바람이 불어와서 뿌연 안개와 비를 몰아내고 강둑에 쌓인 하얀 눈을 녹이기 시작한다. 환하게 비추는 태양은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황갈색과 하얀 공기가 뒤섞여 하늘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짓는다.
해빙의 신은 거대한 망치를 휘두르는 토르보다 더욱 강한 힘을 가졌다. 해빙의 신은 대지를 뒤덮은 얼음을 녹이지만 토르는 그저 얼음을 조각 낼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깨끗함이란 지구를 뒤덮고 있는 안개와 같은 것이지, 그 너머에 있는 푸른 하늘 같은 것은 아니다.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
번역 : 정 윤희
출판사 : 다연
책의 마지막 부분, 맺는말에 그가 쓴 내용들을 통째로 올려두고 싶습니다. 마음에 모두 새겨두고, 바람에도 바닷물에도 씻겨나가지 않도록 단단히 적어 놓고 싶습니다. 이 시기에 꼭 맞는 책, 다시 읽어보아도 새롭게 다가오는 이 책의 번역도 참 좋았습니다. 시간이 될 때, 아니 시간을 내어서라도 이 책을 들고 홀로 있는 시간을 채울 수 있는 공간에서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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